2009년 06월 06일
<전시> 산을 오르는 무수한 방법 전, 갤러리 쌈지, 2009 06 03- 21

산을 오르는 무수한 방법 展
<전시서문>
우리를 휩싸는 혼돈으로부터의 정화, 상처의 치유와 자아의 회복, 세상과의 화해, 이 모든 것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간절히 소망하는 가치일 것이다. 그러나 독일의 철학자 아도르노(Theodor W. Adorno)는 완전히 문명화된 현대사회의 인간들은 자기소외와 자기부정이라는 비극적인 운명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진단한 바 있다.
우리의 전통적인 문명은 이 세계를 삶과 죽음, 선과 악, 문명과 자연, 이성과 감정, 정신과 육체와 같이 서로 대립하는 두 개의 항으로 구성된 이항 대립의 세계로 규정지었다. 그리고 그 대립의 세계에서 후자는 늘 전자의 권위와 영광을 부각시키는 잉여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. 문명이 정해놓은 생명과 선함, 그리고 아름다움의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존재들은 설 자리를 찾지 못한 채 문명의 세계로부터 추방되었다. 그리고 엄격한 문명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과정으로부터 인간의 자기 소외와 학대가 시작되었다.
권민경, 최경주, 홍보람의 작업은 문명이 인간에게 씌운 소외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려는 몸짓에 다름 아니다. 그리고 그 탈출의 방법은 그 옛날 문명의 세계로부터 추방되었던 존재(상처, 감정, 육체, 혼돈, 죽음, 자연)들의 복권에 있다. 그들에게 있어 이항 체계를 형성하는 대립적인 존재들은 하나가 되어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,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없는 채로 무한히 순환하는 뫼비우스의 띠를 이루며 흘러간다. 그 무한한 흐름 속에서 갈등과 치유, 자연과 인간, 육체와 정신, 죽음과 삶은 다시 태초의 합일된 에너지를 회복하게 된다.
본 전시는 무엇보다도 관객과의 대화를 소망한다. 그 노력의 일환으로 전시기획 초기단계부터 작가들은 서로 다른 자아의 세계를 이해하고 소통하기 위해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. 대화는 타자를 이해하는 시발점이다. 타자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은 그 대상을 사랑할 수 있는 기반이며, 대상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야말로 현대사회의 인간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첩경일 것이다.
그렇다고 이들이 삶에 대한 자신들의 인식과 세상을 헤쳐 가는 방법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. 사람들은 각자의 인생행로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산을 오르고 바다를 가르는 방법들을 깨우쳐 간다. 그래서 본 전시는 ‘산을 오르는 무수한 방법’展인 것이다. 산을 오르는 세 작가는 작품을 통해 여러분에게 함께 오르자고 손을 건넨다. 오르는 방법, 걸음걸이는 아무래도 좋다. 산을 오르기 위해, 길을 떠나기 위해 발걸음을 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.
갤러리쌈지 큐레이터 이도영
# by | 2009/06/06 09:22 | Busy Bee News | 트랙백 | 덧글(1)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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